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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영정

                               조선왕조실록 속의 녹둔도(4)

 

  앞서 알아보았던 녹둔도 전투에 관한 전말과 사후 처리에 관한 에피소드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먼 변방의 일일지라도 전투의 참혹한 상황까지 매우 상세히 보고되며 왕도 또한 직접 신하들과 숙의하여 판단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선조 20년 10월 4일 기미 

 녹둔도를 개간했던 병조 판서 정언신이 적호의 빌미가 되었다며 죄를 청하다

병조 판서 정언신(鄭彦信)이 아뢰기를,

 

  "녹둔도(鹿屯島)에 논밭을 일군 일은 전부 신에게서 발의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적호들이 침범해 와 사람과 가축들을 약탈해 갔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이는 모두 신의 그릇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일입니다. 먼저 신을 다스려 조야(朝野)에 사과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녹둔도는 오랑캐의 지역과 너무 가까워 오랑캐들이 침입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로서 처음부터 이같은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우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본도(本島)는 조종조 때부터 우리의 농장이었는데, 경이 군량이 어려운 형편에 놓인 것을 목도하고 백성들을 들여보내 농사를 짓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어찌 잘못인가. 설사 차질을 빚었다고 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도 많은 생각 중에 반드시 한 번은 실수하는 법이니, 경이 국사(國事)에 마음을 다하는 충성에야 어찌 손상됨이 있겠는가. 내 어떻게 경에게 허물을 주어 국사를 돌보지 않고서 방관하는 자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주겠는가. 부디 이것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지 말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선조 20년 10월 10일 을축 

 

  북병사(北兵使)가 치계하였다.

 

  "적호(賊胡)가 녹둔도의 목책(木柵)을 포위했을 때 경흥 부사(慶興府使) 이경록(李慶祿)과 조산 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군기를 그르쳐 전사(戰士) 10여 명이 피살되고 1백 6명의 인명과 15필의 말이 잡혀갔습니다. 국가에 욕을 끼쳤으므로 이경록 등을 수금(囚禁)하였습니다.“

 

  선조 20년 11월 21일 병오

  

  포로를 쇄환한 오랑캐를 상경시키는 일로 예를 만들지 말라는 전교

 

  "녹둔도(鹿屯島)에서 포로가 된 군민(軍民)이 모두 1백 60여 인이다................................지금 만일 새로운 예를 만들어 별운하는 일을 더 마련한다면 만족할 줄 모르는 저 무리들은 외면으로는 순종하되 내심은 거역하면서 아침에 약탈했다가 저녁에는 되돌려 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술수에 떨어져 결국 앉아서 그 속임수와 수모를 받을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옳다고 하겠는가. 만약에 녹둔도의 포로를 쇄환하는 자들만 상경(上京)시키도록 정한다면 뜻밖의 간교한 속임수는 없을 듯하다.

 

  선조 20년 12월 26일 경진 

 

  북병사 이일이 녹둔도가 함락되었다고 치계하다

 

  북병사(北兵使) 이일(李鎰)이 치계하였는데, 대개는 녹둔도(鹿屯島)가 함락되었다는 일이었다. 전교하기를,

 

  "이 서장(書狀)을 보니, 너무도 참혹스럽고 통분하다."하였다. 

 

  서장에 이르기를,

 

  "군관(軍官) 김몽호(金夢虎)의 수본(手本)에 ‘지난 9월 24일 녹둔도의 접전(接戰)에서 힘껏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은 신급제(新及第) 오형(吳亨)과 임경번(林景藩) 등 11인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낼 때 향수(香水)로 목욕시키며 자세히 살펴보니, 오형은 얼굴이 가로 잘리고 목덜미 왼쪽도 비스듬히 절단되었으며 등에는 화살을 맞았습니다. 임경번은 왼쪽 겨드랑이에 화살을 맞았고 얼굴에도 화살을 맞았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녹둔도가 함락될 적에 장사(將士)와 군민(軍民)들은 한결같이 모두 바람에 쓰러지듯 속수무책으로 잡혀간 사람이 여러 사람이었지만 오직 오형 등 11인만이 모두들 용맹스럽고 날랜 군사로서 몸으로 적의 칼날을 막으며 죽을 때까지 항전(抗戰)하였습니다. 

여러 대의 화살을 몸에 맞기도 하고 칼날에 얼굴이 베어지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머리가 잘리고 눈알이 뽑혔지만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아니하였습니다. 피가 전장(戰場)을 뒤덮었고 뼈가 모래와 자갈밭 위에 널렸었습니다. 그 충성을 다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의거는 너무나 늠름하여 기릴 만하니, 휼전(恤典)을 시행하소서." 하였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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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24 15: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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