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면암이 일본 정부에 주는 글 「여일본정부서(與日本政府書)」(청양 모덕사 소장). 곽한소가 기초한 것으로 인정되는 글이다. - <나라와 가문을 위한 삶, 곽한소>109쪽. (출처 : 敬菴全集).
스승 면암님이 을사조약에 반거(反擧)하여 전남 순창에서 의병을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선두에 나아갈 때 약관 스물네 살의 경암님도 의병에 동참하게 되셨다.
의병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경암님은 주로 실무를 맡아 힘을 쏟으셨는데, 각 지역의 뜻있는 지사와 유력자들과의 연계를 도모하고 지원을 요청하며 창의에 필요한 글을 짓고 정리하는 일을 하셨다.
특히, 광무황제에게 올린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의 원안과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성토하는 '토죄박문서(討罪博文書)'는 경암님이 기초한 것으로 추정되며, 창의 후 장차 청국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보내는 글인 '청원청국서(請援淸國書)'도 지으신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스승이 지으신 창의격문(倡義檄文)인 의거소략(義擧疏略)을 밤을 새워가며 필사하여 창의를 독려하고 1,000여 리를 왕복하며 두 발이 부르트도록 정성을 다하였음에도 창의군은 결국 관군과 왜군에 패퇴하고 말았고 스승 면암님은 일본 대마도(對馬島)로 강제로 끌려가 끝내는 단식으로 1906년 11월 17일 섬에서 순절(殉節)하시니 면암 선생님의 문도(門徒)는 물론 전국의 선비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스승이 일제의 차가운 감옥에서 읊은 시(詩)의 운(韻)에 따라 경암님이 지은 시(詩)를 옮겨본다.
道德精忠集大成 綱常任重泰華輕
도덕과 충성을 모아 크게 이루었으니
삼강오륜은 무겁고 태산과 화산은 가벼웠네.
聖君未格蠻夷慴 一世難明萬世明
임금이 오랑캐놈을 겁내어 맞서지 못했는데,
일세에 밝히기 어려운 일을 만세에 밝혔다오.
- <나라와 가문을 위한 삶 곽한소> 中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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