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편집장
아리랑타임즈 특별기획 『도마상 프로젝트』 "잊혀진 문화유산을 기록하고,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탐사기획"
■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하나의 질문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왕유동) 산87-3.
작은 바위에 새겨진 한 기의 석상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왔다.
처음 이 석상이 학계에 알려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제기된 질문은 하나였다.
"이 석상은 누구를 새긴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어떤 연구자는 불교계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의 하나로 해석하였고, 또 다른 연구자는 초기 기독교와 관련된 도마(Thomas) 사도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서로 다른 두 견해는 오랜 시간 공존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견해를 먼저 선택하느냐가 아니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각 학설이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이다.
■ 탐사는 언제나 자료에서 시작한다
역사 연구는 신념이나 기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문화유산을 연구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형태는 어떠한가. 조각 기법은 어떠한가. 명문(銘文)은 무엇을 말하는가. 언제부터 기록에 등장하는가. 기존 연구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그리고 그 주장의 근거는 얼마나 객관적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나씩 검토하는 과정이 곧 역사 연구의 출발점이다.
강동리(왕유동) 도마상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생성. AI Generated
■ 우리가 먼저 경계해야 할 것
도마상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선입견이다.
만약 처음부터 "이것은 불상이다."라고 단정한다면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기 어렵다.
반대로 "이것은 도마상이다."라고 미리 결론을 내린다면 역시 객관성을 잃게 된다.
문화유산 연구는 어느 한쪽의 주장을 증명하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를 가장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획특집에서는 어느 한 학설을 먼저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견해를 차례대로 살펴보고, 각각의 근거와 한계를 함께 검토하려 한다.
■ 같은 석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불교 미술사의 관점이다.
이 견해에서는 조형 양식과 조각 기법, 당시의 불교 문화 등을 종합하여 이 석상을 일반적인 마애불 또는 마애보살입상의 범주에서 이해하려 한다.
두 번째는 다른 시각이다.
석상의 형상뿐 아니라 명문(銘文)과 전승, 그리고 역사적 교류 가능성까지 함께 검토하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두 시각은 서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동리(왕유동) 석상이 얼마나 독특한 문화유산인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평범한 석상이라면 이처럼 오랜 논의가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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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회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
강동리(왕유동) 석상은 과연 누구를 새긴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이름 하나를 찾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한 기의 석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화유산를 해석할 때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그리고 서로 다른 학설을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야 하는가를 함께 묻는 질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느 한 결론을 향해 달려가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자료를 하나씩 살펴보고, 조형을 읽고, 명문(銘文)을 검토하며, 기존 연구를 차분히 따라가 보려 한다.
탐사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질문은 하나이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 모든 탐사는 기존 연구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가설은 기존 연구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연구가 무엇을 밝혀냈고, 어디까지 설명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을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강동리(왕유동) 석상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도마상'이라는 해석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석상을 불교계의 마애입상(磨崖立像) 또는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으로 이해해 왔다.
따라서 이 견해를 먼저 살펴보는 것은 탐사의 순서이자 연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 왜 불상으로 보았는가
불교 미술사의 연구자들은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해석할 때 우선 조형적 특징에 주목하였다.
석상은 자연 암반에 새겨진 마애조각이며, 전신을 표현한 입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다양한 마애불과 마애보살상이 조성되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동리(왕유동) 석상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형식이 유사하므로 불교 조각일 가능성이 높다."
는 것이 초기 연구의 기본적인 출발점이었다.
■ 시대 추정도 조형 양식에서 시작되었다
강동리(왕유동) 석상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도 불교 미술사에서는 조형 양식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다.
옷 주름의 표현, 신체 비례, 조각 기법, 전체적인 양식 등을 종합하여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으며, 일부에서는 통일신라 후기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연대 추정이 문헌 기록이 아니라 양식 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현재까지 확인된 직접적인 제작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시대의 불교 조각과 비교하는 미술사적 방법론이 활용된 것이다.
■ 불교 미술사 해석의 강점
이러한 접근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첫째,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수많은 불교 조각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조형 양식이라는 객관적인 비교 기준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셋째, 제작 시기와 조각 기법을 일정 부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 연구에서 양식 비교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중요한 연구 방법이며, 강동리(왕유동) 석상 역시 이러한 틀 속에서 분석되어 왔다.
■ 그러나 남겨진 과제도 있다
한편, 모든 문화유산이 기존의 유형에 완전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강동리(왕유동) 석상 역시 일부 연구자들은 일반적인 마애불과 비교했을 때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해 왔다.
예를 들어,
석상이 자리한 위치, 명문(銘文)의 성격, 전승과 관련된 해석, 그리고 일부 조형적 특징 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이러한 점은 기존의 불교 미술사 해석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역사 연구에서는 기존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발견될 때,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 탐사의 자세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둘러싼 논의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이다.
기존 연구는 존중받아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자료와 새로운 시각도 열린 마음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함께 비교하고 검토하는 과정이야말로 학문의 발전을 이끈다.
강동리(왕유동) 석상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 제19회가 던지는 두 번째 질문
불교 미술사는 왜 이 석상을 마애입상으로 이해했을까?
그 근거는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으며, 또 어떤 부분에서는 새로운 검토가 필요할까?
이 질문은 어느 한 학설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까지 축적된 연구의 성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탐사는 언제나 기존 연구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새로운 질문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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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해석이 등장하다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둘러싼 논의는 오랫동안 불교 미술사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후 일부 연구자들은 이 석상을 기존의 불교 조각으로만 보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조형적 특징뿐 아니라 명문(銘文)(銘文), 지역 전승, 그리고 고대 동서 교류의 가능성까지 함께 검토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도마상설'이다.
중요한 점은, 이 학설 역시 하나의 연구 가설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현재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확정된 견해라기보다, 기존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연구자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제안한 해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 도마상설이 주목한 것은 무엇인가
도마상설을 제시하는 연구자들은 하나의 요소만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검토 대상이 된다.
석상의 전체적인 조형과 자세,
머리가 소실된 현재의 상태와 원래 형태에 대한 논의,
바위에 새겨진 명문(銘文)의 해석,
강동리(왕유동) 일대에 전해지는 여러 전승,
고대 동아시아의 육상·해상 교류 가능성.
즉,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라기보다 여러 단서를 종합하여 하나의 가설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 교류 가능성도 하나의 배경이다
제16회와 제17회에서 살펴보았듯이, 고대 한반도는 육상과 해상을 통한 국제 교류망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은 아니었다.
가야를 중심으로 한 해상 교역,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내륙 교통망을 통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은 다양한 역사 자료에서 확인된다.
도마상설은 이러한 교류 가능성을 하나의 역사적 배경으로 참고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점이 있다.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교류를 통해 특정 종교나 인물이 실제로 전래되었다는 사실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전자는 역사 자료를 통해 일정 부분 확인되는 영역이고, 후자는 더 많은 자료와 검증이 필요한 연구 과제이다.
■ 명문(銘文)과 전승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도마상설에서는 명문(銘文)과 지역 전승도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명문(銘文)은 판독과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가 제시될 수 있으며, 전승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거나 새로운 내용이 덧붙여질 수 있다.
따라서 명문(銘文)과 전승은 무조건적인 증거가 아니라, 다른 자료와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역사 자료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 연구에서 하나의 자료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강동리(왕유동) 석상 역시 조형, 명문(銘文), 입지, 교류, 전승을 함께 살펴볼 때 비로소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 탐사는 가능성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새로운 가설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연구할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역사학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학문이다.
도마상설 역시 그러하다.
이 학설이 앞으로 더 많은 자료를 통해 보완될 수도 있고, 다른 해석과 비교되며 수정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열린 자세로 바라보는 일이다.
■ 제19회가 던지는 세 번째 질문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도마상으로 보는 견해는 어떤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제시되었는가?
그 근거는 어디까지 확인 가능한 사실이며, 어디부터가 해석과 추론의 영역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어느 한 학설의 승패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 자료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이다.
탐사는 새로운 답을 찾는 일인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 두 학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불교 미술사의 관점은 조형 양식과 조각 기법, 그리고 당시 불교 문화의 흐름을 바탕으로 이 석상을 마애입상 또는 마애보살입상으로 이해해 왔다.
반면 도마상설은 조형적 특징뿐 아니라 명문(銘文), 전승, 그리고 고대 동서 교류의 가능성까지 함께 검토하면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두 학설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같은 문화유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반드시 서로를 배척하는 관계만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관점이 하나의 문화유산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일 수도 있다.
■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지금 단계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강동리(왕유동) 석상은 일반적인 문화재와 달리 오랜 세월 여러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
둘째, 현재까지 제작 시기와 조성 목적을 명확하게 기록한 동시대 문헌은 확인되지 않았다.
셋째, 석상의 조형과 명문(銘文), 입지, 전승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 쟁점은 아직 학문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세 가지는 현재까지의 연구를 종합할 때 비교적 신중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 아직 단정할 수 없는 부분
반대로 지금 단계에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도마 사도를 형상화한 것인지, 전래 시기는 언제인지, 어떤 종교적 목적을 위해 조성되었는지, 또 명문(銘文)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자료와 검증이 필요하다.
학문은 빈칸을 억지로 채우는 작업이 아니다.
확인된 사실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태도가 오히려 연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 탐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제19회는 어느 한 학설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집필한 기사가 아니다.
오히려 강동리(왕유동) 석상을 둘러싼 다양한 연구 성과를 함께 살펴보고, 현재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으며 무엇을 더 연구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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