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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제18회] 침묵하는 석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길 위에 남겨진 왕유동 도마상을 다시 읽다 - 석상이 서 있는 장소가 전하는 또 하나의 역사
  • 기사등록 2026-08-05 00: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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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보다, 왜 그 자리에 남겨졌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왕유동 도마상은 한 기의 석상이 아니라, 오래된 길과 사람들의 기억이 만나는 역사적 공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아리랑타임즈 특별기획 『도마상 프로젝트』 "잊혀진 문화유산을 기록하고,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탐사기획"

 

 

■ 사람들은 오랫동안 석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왕유동(王留洞).

산 깊숙한 곳도 아니고 거대한 절터도 아닌 작은 언덕길 옆 바위에 한 기의 석상이 새겨져 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바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바위에는 오랜 세월 풍화를 견디며 서 있는 한 인물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 석상은 오랫동안 '불상'으로 불려 왔다.

반면 일부 연구자들은 그 조형적 특징과 명문(銘文), 그리고 전승을 근거로 전혀 다른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바로 '도마상'이라는 해석이다.

 

이 논쟁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논의는 대부분 "누구를 새긴 석상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결과 정작 더 근본적인 질문 하나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다.

 

왜 이 석상은 하필 이곳에 남겨졌을까?

 



 

 ■ 유물은 형태만이 아니라 장소도 말한다

 

고고학에서는 유물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출토 위치와 입지(立地)이다.

 

같은 유물이라도 궁궐에서 발견되는 것과 무덤에서 발견되는 것은 의미가 다르고, 산 정상에서 발견되는 것과 교통로에서 발견되는 것은 해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문화유산은 단순히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어떤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는가를 함께 읽어야 비로소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왕유동 석상 역시 마찬가지다.

 

이 석상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얼굴의 형태나 손 모양만 볼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석상이 서 있는 장소를 읽어야 한다.

 

 

■ 왕유동 석상이 서 있는 곳

 

기자가 현장을 답사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외로 소박한 주변 환경이었다.

석상이 새겨진 바위는 거대한 절벽이 아니다.

높은 산 정상도 아니다.

사찰 경내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오가던 고갯길 옆의 비교적 작은 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그 주변을 걸어보면, 왜 이 길이 오래전부터 중요한 통로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주는 예로부터 영남과 중부 내륙을 잇는 중요한 교통망의 한 축을 이루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지역이었다.

 

수많은 상인과 관리, 승려와 여행객들이 이 길을 넘나들었고, 왕조의 사신과 백성들의 발걸음도 이 길을 지나갔다.

이 석상은 바로 그러한 길의 기억 속에 서 있다.

 

 

■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현대인은 길을 단순히 목적지까지 이동하기 위한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의 길은 달랐다.

길은 물자가 이동하는 통로였고, 사상이 전파되는 통로였으며, 문화와 종교가 서로 만나는 공간이었다.

 

제16회와 제17회에서 살펴보았듯이, 철을 매개로 한 국제 교역과 육상·해상 교류망은 한반도를 결코 고립된 공간으로 남겨 두지 않았다.

그 길 위에는 사람만 오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신앙, 언어와 문화도 함께 이동했다.

 

따라서 왕유동 석상이 오랜 교통로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지리적 우연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이 석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입지 자체가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내용을 돕기 위한 인포그래픽, AI Generated

 

 

■ 제18회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

 

이제부터 우리는 석상의 얼굴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그 석상이 서 있는 장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왜 사찰이 아니라 길목이었을까?

왜 깊은 산중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던 고갯길이었을까?

그리고 그 장소는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왕유동 석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석상은 지금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의 자리는, 2천 년에 걸친 길과 사람, 그리고 역사의 흔적을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장소는 침묵하지 않는다

 

역사 속 문화유산은 결코 우연한 장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궁궐은 정치 권력을 상징하는 곳에 세워지고, 성곽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선택하며, 사찰은 수행과 신앙에 적합한 공간을 찾는다.

 

조각 역시 마찬가지다.

석상 하나가 세워지는 위치에도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신앙, 그리고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다.

 

따라서 왕유동 석상을 이해하려면 조각의 형태만이 아니라 그 석상이 왜 그 자리에 남게 되었는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우리나라 석불의 일반적인 입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불교 조각을 살펴보면 일정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그리고 고려 전기에 조성된 많은 불상과 마애불은 사찰 경내나 깊은 산중의 암벽, 혹은 거대한 자연 암반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수행과 예배의 장소이자 불교 신앙의 중심이었다.

 

반면 고려 후기에 이르러 교통로와 고갯길, 마을 어귀 등에 석불이나 마애불이 조성되는 사례가 점차 나타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여행자의 안전을 기원하거나 지역 공동체의 평안을 비는 신앙의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길목에 세워진 석상은 사찰 중심의 종교 공간과는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왕유동 석상이 남겨진 자리

 

왕유동 석상을 직접 찾아가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변의 규모이다.

석상이 새겨진 바위는 거대한 암벽이 아니다.

높은 절벽도 아니다.

주변을 압도하는 대형 마애불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수 있는 비교적 작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위치이다.

석상은 깊은 산속이 아니라 영주 남부의 옛 교통로와 연결된 고갯길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입지는 단순히 조각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이 길을 어떤 공간으로 인식했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 길은 사람을 이어 주는 공간이었다

 

오늘날 도로는 자동차가 오가는 교통시설이다.

그러나 옛길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었다.

 

상인이 물자를 운반하고, 관리가 공무를 수행하며, 승려가 수행의 길을 떠나고, 나그네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가던 공간이었다.

 

길은 서로 다른 지역을 연결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었으며, 문화와 사상이 이동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왕유동 석상이 오랜 교통로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왕유동은 우연히 선택된 장소였을까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는 이 석상이 왜 정확히 그 자리에 조성되었는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왕유동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오가던 길목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고려 말에는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향하던 공민왕이 잠시 머물렀다는 전승이 전해질 만큼, 이 길은 오랜 세월 지역사 속에서 중요한 교통로로 기억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은 왕유동이 단순한 산골이 아니라, 역사 속 사람들의 이동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었음을 보여 준다.

 

 

■ 제18회가 던지는 두 번째 질문

 

왕유동 석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왜 거대한 절벽이 아니라 작은 바위였을까?

왜 종교의 경내가 아닌 길목이었을까?

그리고 그 길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이 석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석상의 위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 자료라는 사실이다.

 

형태를 연구하는 일만큼, 장소를 읽는 일도 중요하다.

왕유동 석상은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우리에게 말한다.

 

"나를 보기 전에, 내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

 

 

■ 하나의 지명은 하나의 역사다

 

역사 연구에서 지명(地名)은 단순한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억과 생활, 그리고 중요한 사건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진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왕유동(王留洞)' 역시 그러한 이름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먼저 도마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 마을의 이름을 살펴보면, 이곳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동과 기억이 교차했던 공간이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 공민왕이 머물렀다는 전승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현장 안내문에 따르면, 고려 말 홍건적의 난 당시 공민왕은 개경을 떠나 안동으로 피난하는 길에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 왕(王)' 자와 '머무를 유(留)' 자를 써 왕유동(王留洞)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 전승이 역사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사실인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승의 진위 여부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왕이 지나간 길'로 기억해 왔다는 점이다.

 

지명은 바로 그러한 집단의 기억을 담아 전해지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 길은 시대를 넘어 이어진다

 

영주 일대의 여러 고개와 엣길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영남과 중부 내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망의 일부였다.

시대가 바뀌고 왕조가 교체되어도 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상인이 걷던 길을 관리가 걷고, 승려가 넘던 고개를 왕이 넘으며, 백성이 오가던 길은 다시 후대 사람들의 생활로 이어진다.

 

왕유동도 그러한 길 위에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왕유동은 어느 한 시대만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 시대가 겹쳐진 역사적 장소라고 할 수 있다.

 

 

■ 석상과 길의 만남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면, 왕유동 석상이 길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물론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석상이 길을 의식하여 조성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석상이 오랜 세월 사람들이 지나던 공간에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상인이었을까 승려였을까 관리였을까?

혹은 먼 지역에서 이 길을 넘어온 이름 모를 여행자였을까?

 

이 질문은 석상의 정체를 단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석상이 놓인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질문이다.

 

 

■ 문화유산은 공간과 함께 읽어야 한다

 

문화유산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의 산세와 하천, 옛길과 마을, 지명과 전승, 그리고 그곳을 오간 사람들의 기억이 함께 모여 하나의 역사적 맥락을 이룬다.

 

왕유동 석상도 마찬가지다.

이 석상을 단순히 조각품 하나로만 바라본다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그러나 길과 공간, 지명과 전승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석상은 더 이상 침묵하는 돌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던 역사의 증인이 된다.

 

 

■ 제18회가 던지는 세 번째 질문

 

왕유동이라는 이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이름에는 한 시대의 기억이 담겨 있고, 그 기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길가 작은 바위에 새겨진 이 석상도 단순한 조각으로만 보아야 할까?

아니면 오랜 세월 길을 오가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견뎌 온 역사적 공간의 일부로 읽어야 할까?

 

왕유동 석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곁을 지나간 길은, 그리고 그 길이 남긴 지명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역사는 유물만이 아니라, 그 유물이 서 있는 장소와 그 장소를 기억하는 이름 속에도 남아 있다."

 

 

■ 우리는 무엇을 확인했는가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는 왕유동 석상을 둘러싼 몇 가지 사실을 함께 살펴보았다.

 

첫째, 이 석상은 사찰 경내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람들이 오가던 옛 고갯길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둘째, 석상이 새겨진 바위는 거대한 절벽이나 대형 암반이 아니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비교적 작은 바위이다.

 

셋째, 왕유동이라는 지명은 공민왕의 피난 전승과 함께 오랜 세월 이곳이 역사적 교통로로 기억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이 세 가지는 현재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과 현장 관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

 

그러나 이 사실들만으로 석상의 성격을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구를 형상화한 것인지, 언제 조성되었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새겨졌는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과제이다.

 

역사는 단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해석도 달라질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견해가 공존하는 것 역시 역사 연구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결론보다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자료이다.

 

 

■ 그러나 장소는 분명한 사실을 말한다

 

비록 석상의 정체를 둘러싼 논의는 계속될 수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석상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지나던 길 위에 남아 있었다.

 

그 길은 상인을 지나가게 했고, 관리와 승려를 지나가게 했으며, 이름 없는 수많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품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도 그 자리를 지키며 오늘날까지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점에서 왕유동 석상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길의 역사와 함께 시간을 견뎌 온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 길은 문명을 연결한다

 

이번 기획특집 제16회와 제17회에서는 철과 교역, 육상과 해상의 교류망을 통해 고대 한반도가 결코 고립된 공간이 아니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제18회에서는 그 교류의 길 위에 서 있는 왕유동 석상을 역사적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러한 접근은 특정한 결론을 미리 정해 놓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유산를 그 시대의 길과 사람, 그리고 공간 속에서 함께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길은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니다.

길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문화를 이어 주며, 때로는 한 시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역할을 한다.

 

왕유동 석상은 바로 그러한 길의 기억 속에 서 있다.

 

 

■ 탐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왕유동 석상은 지금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침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때로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 석상이 왜 그곳에 조성되었는지, 누가 그 앞을 지나갔는지, 어떤 시대를 바라보며 오늘까지 남아 있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역사는 하나의 답을 얻는 순간 끝나는 학문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만날 때마다 다시 시작되는 탐사의 과정이다.

 

왕유동 석상도 그러하다.

 

 

■ 제18회를 마치며

 

이번 연재는 석상의 얼굴을 해석하기보다 그 석상이 서 있는 장소를 먼저 읽어 보려는 시도였다.

 

문화유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주변의 길과 산세, 사람들의 왕래, 지명과 전승,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지역의 기억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의 역사로 읽힌다.

 

왕유동 석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나의 모습을 보기 전에, 내가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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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8-05 00: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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