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김춘산
[서론 : 역사의 지평을 넓히는 발상의 전환]
역사는 종종 우리가 그어 놓은 '불가능'이라는 선에 의해 제한되곤 한다.
특히, 영주 강동리 왕유동의 도마바위(일명 '도마상', 이하 동일)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거센 반론은 "어떻게 2,000년 전 서양의 인물이 이 먼 땅끝까지 올 수 있었는가?"라는 지리적 회의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기 48년,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가야로 시집온 허황옥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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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릉원내 허황옥 동상. 출처 : newsis 포토뉴스 | 허황옥 공주 초상화 출처 : 고려문화재연구원 |
허황옥의 도래가 역사라면, 동시대 인도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던 사도 도마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금관가야에 발을 들였을 가능성 또한 충분히 열려 있다.
이제 우리는 영주 '도마상'을 고립된 하나의 암각화가 아닌, 고대 동·서양 교류의 거대한 맥락 속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1. 허황옥의 도래 : '불가능'을 '사실'로 바꾼 해상 루트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서기 48년 7월 27일, 붉은 깃발을 단 배를 타고 가락국에 도착했음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인도에서 '파사석탑'을 싣고 왔으며, 수로왕과 혼인하여 '가야'의 국모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허황옥의 이동 경로다.
당시 인도는 로마 제국과 한나라 사이를 잇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 남단으로 이어지는 해상 경로는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다.
허황옥이 이 길을 통해 '가야'에 안착했다는 것은, 당시의 항해 기술과 국제적 교류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광범위했음을 증명한다.
만약 공주 한 명의 행렬이 가능했다면, 복음 전파를 위해 목숨을 건 전도자의 여정 역시 결코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 것이다.
2. 사도 도마와 인도, 그리고 그 너머의 '땅끝'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도마는 서기 52년경 인도 남부 말라바르 연안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도에는 지금도 도마가 세웠다는 '시리아 정교회' 공동체가 존재하며, 그의 순교 성지가 보존되어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시기다.
사도 도마가 인도에서 전도하던 시기와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야로 건너온 시기는 서기 1세기 중반으로 완벽하게 일치한다.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던 도마에게, 인도는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인도와 가야 사이의 활발한 해상 교류는 도마에게 '더 먼 동쪽'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고, 그는 허황옥 공주의 행렬과 같은 경로를 통해 동방의 땅 끝, 한반도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3. 영주 도마상 : 바위에 새겨진 역사적 지문
경상북도 영주의 암각화가 '도마상'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발견자의 주관적 영감 때문만이 아니다. 이 상에는 일반적인 불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특징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 좌측 하단의 명문 : 바위에는 '지전(地全)' 혹은 '도마(Thomas)'를 연상시키는 고대 문자의 흔적이 발견.
• 손의 모양과 복식 : 불상의 전형적인 수인(手印)과는 결이 다른 손 모양과, 당시 동방 기독교인들이 입었던 복식과의 유사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 발가락의 형태 : 양말을 신지 않은 채 드러난 발가락의 묘사는 고대 로마나 중동 지역의 인물 조각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맞닿아 있다.
이 유물이 '영주'라는 내륙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가야'에 도착한 도마가 내륙을 거쳐 북상하며 복음을 전파했다면, 그 흔적이 영주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졌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탑'이 가야의 불교적 색채 속에 보존되었듯, 도마의 흔적 역시 후대에 불상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해졌을 뿐 그 본질은 기독교 전래의 상징일 수 있는 것이다.
4. 우주적 섭리와 역사의 퍼즐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조차 몰랐던 시대에도 인류가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며 교류했음을 과학과 고고학을 통해 배우고 있다.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우리가 평온을 누리는 기적을 겪듯,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온갖 기적들이 존재해 왔다.
허황옥이라는 인도 여성이 '가야'의 왕비가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사도 도마라는 유대 남성이 한반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그나 그 추종자들이 '영주'에 그 발자취를 남겼을 것이라는 역사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가능성의 역사'인 것이다.
【결론 : 아집을 버리고 마주하는 진실】
이제는 '도마상'을 바라보는 편협된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인도 공주 허황옥의 이야기는 설화가 아닌 역사가 되었고, 그녀가 건너온 바닷길은 이제 사도 도마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도 남는다.
'도마상'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물이 아니다.
그것은 2,000여년 전, 인류 구원의 소식을 들고 험난한 파도를 넘어온 한 전도자의 열정과, 그를 이 땅으로 인도한 하늘의 섭리가 응축된 역사적 현장인 것이다.
허황옥과 도마, 이 두 인물이 공유했던 '인도'와 '가야'의 연결 고리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민족의 영적 뿌리가 얼마나 깊고 광활했는지를 더욱 더 깊이 깨닫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좁은 식견으로 역사의 기적을 가두지 말자.
허황옥 공주가 '가야'의 문을 열었듯, '도마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적 진실의 문을 열어줄 준비를 마쳤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 바위에 새겨진 메시지를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땅끝까지 이어진 신의 섭리를 온전히 마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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