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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서우(西友)》 

                                       잡지에 나오는 녹둔도(2) 

 

  잡지 《서우(西友)》는 기울어진 나라를 구하고자 서울에서 평안도 황해도 출신의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구국 계몽단체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학회인 서우학회의 기관지로서 190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되었다. 《서우(西友)》 제14호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간략한 글이 실려 있으며 그 가운데 조산 만호시절의 이순신을 설명하며 녹둔도와 녹둔도 전투에 대하여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

 

잡지명 《서우(西友)》 제14호 

발행일 1908년 01월 01일 

기사제목 李舜臣 

기사형태 문예기타 

 

李舜臣


李舜臣의 字 汝諧니 德水人이라. 兒時에 英爽不羈야 與群兒戱에 常作戰陣狀이러니 及長에 從武擧야 騎射絶倫고 雖遊於武人이나 高簡靜默야 口無褻言니 儕流咸憚之러라. 宣廟丙子에 中第而不事干謁이라. 權知訓鍊院奉事兵曹判事 金貴榮이 欲以其庶女爲妾이여 舜臣이 辭謝曰 初出仕路에 豈宜托跡權門耶아 栗谷李先生이 時判吏部라 聞其名고 曰 是我同宗也라 고 因人求見니 舜臣이 不肯曰同宗則可見이어니와 銓地則不可見이라 더라. 


調北邊權管이라가 秩滿에 爲忠淸兵使軍官야<29>未嘗屈意徇人고 爲鉢浦萬戶에 水使成鏄이 欲伐館舍桐木爲琴이여 舜臣이 距之不許니 水使가 大怒而不敢取니라. 後에 乾原堡權管으로 轉야는 時에 賊胡丐乙只乃가 有야 久爲邊患이러니 舜臣이 設奇誘致야 生縛以獻兵使니 兵使가 嫌其事不由已야 反以擅兵으로 請罪니라. 


丁父憂야 服闋에 爲造山萬戶러니 方伯이 建議야 녹둔도(鹿屯島)屯田을 設야 使舜臣으로 兼管이여 舜臣이 以地遠兵少로 屢請添兵되 兵使 李鎰이 不許러니 及 秋熟에 虜果擧兵擣寨이라 舜臣이 挺身拒戰야 射사 其酋고 追擊擄 六十餘人이러니 兵使謂以挑釁이라 야 欲殺以自解야 陳刑具將斬之라. 軍官 等이 環視泣訣고 勸之酒 舜臣이 正色曰 死生이 命也라 飮醉何爲오 고 卽 就庭抗辨야 不肯署狀니 兵使意沮야 囚而秦聞니 宣祖察其無罪고 令從軍自效러니 俄以擊反胡獻級으로 宥還다. 


全羅巡察使 李洗이 辟爲軍官曰以君之才로 何抱屈至此오 奏爲本道助防將다. 己丑에 拜井邑縣監이러니 都事曹大中이 辭連鄒汝立 逆獄야 被追詣理 金吾郎이 搜取文書라가 見舜臣有答問書고 密語欲去之여 舜臣이 曰 吾書에 無他語오 且己在搜中니 不可不上이니라. 及 大中之柩過邑에 舜臣이 具奠器送曰彼旣不服而死니 其罪를 不可知라 고 鄭相彦信이 亦繫獄이러니 舜臣이 適至京이라가 以其爲舊帥也라 야 詣獄門候問니 聞者義之러라. 辛卯에 爲全羅左道水軍節度使니 時에 倭釁이 已啓而朝野宴然이라. 


舜臣이 獨深憂之야 日修備禦 鑄鐵鎖야 橫截海港고 創作龜船야 上覆以板고 針以錐刀야 使敵人으로 不得<30>登蹋고 藏兵其底야 八面放銃야 燒撞賊船야 常以取勝이러라.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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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01 16:36:08
  • 수정 2022-12-01 16: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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