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이충무공 승전비
1762년(영조 38년) 녹둔도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석이 이순신 장군이 근무하던 곳에 세워진다. 처음엔 주민들이 기념탑을 세우고 가까운 봉우리를 승전봉(勝戰峰)이라 불렀는데, 이순신의 5대손인 이관상(李觀祥, 1716~1770)이란 분이 관북절도사로 부임해 탑을 없애고 그 자리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함경북도 나선시 조산리다. 북한 쪽 기록을 보면, 지금 남아 있는 비석은 1882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 박래겸(朴來謙, 1780~?)이 북평사(北評事)로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서 체험한 일들을 적은 《북막일기 北幕日記》에 이순신 장군의 승전비를 직접 가서 봤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문 밖에는 이충무공의 승전비가 있었다. 대개 충무공이 조산만호로서 일찍이 여기서 번호(蕃胡)를 깨뜨렸으므로 그 후손인 이관상(李觀祥)이 북병사로서 비를 세웠고 판서 조명정(趙明鼎)이 음기(陰記)를 지었다.』
그 시절에 한양에서 북쪽으로 가장 먼 두만강 하구 끝까지 가서 이순신 장군의 승전비를 본 감회치고는 너무 짧다. 비석을 본 사람이 어디 박래겸뿐일 리는 없겠지만, 그나마도 직접 봤다는 기록은 정말 찾기가 어렵다. 워낙 변방 중의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귀중한 기록인 건 분명하다.
이를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넉 점이 남아 있다.
(좌)이충무공 승전대와 (우)이충무공 승전대비 비각
왼쪽 사진은 조산리 석성 터에서 바라본 승전대(勝戰臺)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승전봉(勝戰峯)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다. 오른쪽은 비석을 모신 건물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승전대(勝戰臺) 세 글자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내력 등을 자세히 소개한 글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비석 뒷면에 새긴 글을 음기(陰記)라고 하는데, 이 글은 위에 인용한 《북막일기》의 기록대로 당시 함경도 관찰사 조명정(趙明鼎)이 지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 회에서 이어진다.
이충무공 승전대비의 앞면과 뒷면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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