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
白衣從軍하여 捲土重來하라
북병사(北兵使) 이일이 경흥 부사(慶興府使) 이경록(李慶祿)과 조산 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군기를 그르쳐 전사(戰士) 10여 명이 피살되고 1백 6명의 인명과 15필의 말이 잡혀감으로써 국가에 욕을 끼쳤으므로 이경록 등을 수금(囚禁)하였으니 참형을 내려달라는 장계를 올렸다. 이에 대하여 선조가 내린 교지는 다음과 같다.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병사(兵使)로 하여금 장형(杖刑)을 집행하게 한 다음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공을 세우게 하라."
- 선조실록 21권, 선조 20년 10월 16일 신미 첫 번째 기사
백의종군은 조선시대에 중죄를 지은 무관에게 일체의 관직과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참전케 하는 처벌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 4년 전인 1588년에 두만강 북쪽 녹둔도에 침공했던 여진족들을 토벌하기 위한 전투에 백의종군으로 참전했고, 이후 임진왜란 기간 중에 두 번째의 백의종군을 했다.
조선시대 무관에 대한 처벌이었던 ‘백의종군’의 실체는 과연 어떠했을까?
과거에는 이순신이 두 번 겪었던 백의종군은 말 그대로 ‘장수가 병졸로 신분이 강등되어 복무하는 치욕적 형벌’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파면보다는 약한 형벌이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중론이다. ‘단순한 보직 해임조치로서 장수의 신분을 유지한 채 복무하는 처벌’이라는 것이다. 즉, 무관이 전시나 위급한 상황에 파직되었을 때 직무 중인 현 직위의 권한은 잃지만 전직관료의 신분으로 현직을 보좌하게 하려는 처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자료가 있는데, 1588년 1월 함경도 북병사 이일(李鎰)이 지휘한 여진족 토벌전이었던 ‘시전부락 전투’ 상황을 그린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육군박물관 소장)라는 제목의 기록화이다.
이 전투 기록화에는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조선군 장수들 전체의 명단과 직책, 편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는데, 이순신을 비롯한 50여 명의 참전 장수가 확인되고 있다.
이순신은 1차 백의종군 처분을 받은 뒤 4개월 뒤에 이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뒤 백의종군의 처벌에서 사면되었다.
당시 조선군은 2,700여 명의 군사를 셋으로 나눠 전투를 수행했는데, 이순신은 해임되어 현직이 없었지만 ‘우위(右衛), 우화열장(右火烈將)’으로서 우위장이었던 온성부사 양대수(楊大樹)의 수하 장수로 참전했던 것이다.
특히 당시 종성부사였던 원균도 ‘우위, 일계원장(一繼援將)’으로서 참전했던 점을 미루어 볼 때 이순신은 원균은 동급의 ‘장수’ 신분으로 편성되어 전투에 참가했음을 알려준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좀 더 자세한 자료를 들여다 보기로 한다.
두 번째 백의종군 시절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순신이 기록한 난중일기에서 백의종군을 하고 있던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길을 지날 때마다 지방 관리들과 장수들이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오고 술과 식량, 그리고 짐이 무거울까봐 말까지 보내주는 것이 나와 있고 여기에 더해 이순신 장군을 보좌하는 군관도 배속이 되어있었고 심지어는 어느 일정 수준의 녹봉 즉 국가에서 주는 급료도 받았다. 실제로 이순신의 사례뿐만 아니라 조선은 반상의 법도가 엄격하고 특히 이순신은 당상관이라는 관료 중에서도 고위직에서 파직되었기에 직첩은 거두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전직 관료는 현직에 준하여 대하는 공식적인 제도가 존재했고, 당연히 전직 관료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며, 감히 평민이나 병사가 백의종군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까지도 있었다. 그리고 파직이라 해도 현직에서 받았던 품계는 (정3품 같은) 그대로 유지가 되기 때문에 신분까지 잃지는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금방 복직되거나 최소한 직첩은 돌려주는 게 조선시대 수준의 처벌이다.
물론 조산보 만호 시절에야 종4품으로 현재 대령정도의 하급 무장이었지만 어쨌든 장수의 보직으로 재차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
종합해 볼 때, 백의종군이란 중죄를 지었지만 지난 전공을 참작하여 내린 보직 해임조치로서 직책은 없지만 장수의 신분은 유지된 상태에서 재차 전공을 세울 수 있도록 한 처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경상남도청 홈페이지 內 충무공 이순신 및 인터넷 참조)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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