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이충무공전서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조선왕조실록이나 제승방략 외에 녹둔도사건과 그즈음 이순신의 행적과 관련한 사료로는 행록(行錄)이 있는데 이는 이순신의 큰형 이희신(李羲臣)의 아들 이분(李芬)이 쓴 것으로 이분(李芬)은 열네 살 때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로 작은 아버지 이순신의 보살핌을 받았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다음에는 작은아버지 이순신 곁에서 문서 작성과 명나라 장수 접대 등의 일을 도왔다고 하며 실록편수관, 연경사 서장관, 병조정랑 등을 지냈다.
또 승지 최유해가 쓴 행장(行狀)이나 『징비록』, 『충민사기(忠愍祠記)』 등을 보면 전투의 전후 과정 외에도 그 시기를 전후한 이순신의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가치관, 인품,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처신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일화들이 들어있다. 이런 일화들을 모아 재구성한 이야기들을 옮겨본다.
「1586년 1월에 3년상을 마친 이순신은 곧 사복시(司僕寺)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다. 업무를 시작한 지 겨우 16일 만에 조정은 그를 천거하여 조산(造山)만호로 삼았다. 당시 조산만호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오랑캐들의 준동이 심한데다 조산이 오랑캐 땅에 아주 가까운 곳이므로, 조정에서는 사람을 엄선해 보내려 하였다.다음해 가을 이순신은 녹둔도(鹿屯島) 둔전관(屯田官)을 겸하게 되었다.
이순신은 녹둔도가 외로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지키는 군사가 적은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여러 번 병사 이일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군사를 증원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이일은 이순신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8월에 과연 적이 군사들을 보내 이순신이 지키는 나무 울타리를 에워쌌다. 붉은 털옷을 입은 적군 몇 명이 앞장서 지휘하며 달려오므로, 이순신이 활을 당겨 연달아 쏘아 맞혔다. 붉은 옷 입은 자들을 모두 거꾸러뜨리니, 적군은 달아났다. 이순신은 이운룡과 함께 그들을 추격하여 사로잡힌 우리 군사 60여명을 탈환하였다. 이날 이순신은 오랑캐의 화살에 맞아 왼쪽 다리를 상했으나, 부하들이 놀랄까봐 몰래 화살을 뽑아버렸다.
병사 이일은 이순신을 죽여 입을 막음으로써 자신의 죄를 면하려고 하였다. 이일은 이순신을 가둔 다음 형벌을 가할 생각이었다. 이순신이 병사에게 불려 들어갈 때였다. 병사 이일의 군관 선거이가 본시 이순신과 가까이 지내던 사이라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술이라도 마시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이순신은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거늘, 술은 마셔 무엇하겠소.”
선거이가 다시 말하였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면, 물은 마실 수 있는 것 아니오.”
하지만 이순신의 대답은 여전하였다.
“목이 마르지 않은데 물은 무엇하러 마시겠소.”
마침내 이순신이 들어서자, 이일은 전투에서 패하였다는 진술서를 쓰라고 하였다. 이순신은 거절하며 말하였다.
“내가 병력이 적기 때문에 군사를 증원해 달라고 여러 번 청하였으나, 병사가 들어주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 공문이 여기 있습니다. 조정에서 전후사정을 파악하게 되면, 죄가 내게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힘껏 싸워서 적을 물리치고, 뒤쫓아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탈환해 왔는데, 패배하였다고 따지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이순신의 말소리나 동작은 조금도 떨림이 없었다. 이일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순신을 옥에 가두어 두었다.
사건이 임금의 귀에 들리자, 임금이 말하였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패한 경우와는 다르다. 백의종군하여 공을 세우도록 하라.” 이순신은 그해 겨울에 공을 세워 특사를 받았다.
이순신이 건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북쪽 변방을 지키던 병사 하나가 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타고 갈 말이 없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이순신이 말하였다.
“내 비록 그 사람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제해 주는데 어찌 알고 모르는 것을 따지겠는가.”
그러고는 자신의 말을 내어주었다.』 -『행장』-
「함경도 순찰사 정언신이 이순신에게 명하여 녹둔도 둔전을 지키게 하였다. 안개가 짙게 낀 어느 날이었다. 병사들이 모두 밖에 나가 벼를 수확하느라, 방책 안에는 겨우 10여 명의 병사만 남아 있었다. 이때 창졸간에 오랑캐들이 말을 타고 쳐들어왔다. 이순신은 방책문을 굳게 닫아걸고, 방책 안에서 연달아 유엽전(柳葉箭)을 쏘았다. 수십 명의 적이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하여 오랑캐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으며, 이순신은 문을 열고 오랑캐들을 추격해 그들이 약탈해 간 물건을 다시 빼앗아왔다.」 -『징비록』-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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