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이순신 장군 북방유적 국제학술회의
1937년 스탈린이 녹둔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후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군사통제지역으로 묶여버렸다. 이후 구소련 시절인 1984년 1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의 국경 회담이 열리면서 과연 녹둔도 문제가 논의될 것인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양국은 국경협정(1985년)과 국경설정의정서(1990년)를 체결하면서 두만강의 중심선을 경계로 합의했다. 당시 협상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녹둔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성과 없이 녹둔도에 대한 소련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말았다. 이후 1990년대 이후에도 북한은 녹둔도 영역의 영토주권을 러시아 소유로 인정했다.
한편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러시아 대사관에 직접 녹둔도 반환을 요구했으나, 역시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현재로서는 러시아 연방 정부가 녹둔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서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민간과 손을 잡고 작게나마 녹둔도에 대한 관심의 끈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2019년 12월 8일 서울시는 국내 민간단체인 (사)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북한, 러시아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활약 무대 중 하나인 나선-녹둔도 유적 발굴조사를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북측에선 한국의 문화재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이 참여하고, 러시아에서는 극동 연방대학과 공공기관인 러시아군사역사협회가 함께 하기로 하였다.
또한 참가 기관과 단체는 당시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 하산군 옛 녹둔도와 북한 함경북도 나선특별시 일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순신 장군 유적의 발굴 조사를 2020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현재 북한의 나선시에는 1587년 42세 때 조산보(현재의 함경북도 나선시)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으로 부임해 그해 여진족과 벌인 녹둔도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이순신 장군의 공적비인 ‘승전대비’와 이순신 사령부가 있던 조산진성이 남아있다.
남측과 북측, 러시아 측은 발굴 조사를 위한 준비 단계로 사전 조사와 현장답사, 국제학술회의를 이미 마쳤고, 2019년 12월 1일과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는 러시아 측이 녹둔도 사전 조사에서 발굴한 조선 시대 백자 조각 등 출토 유물들이 전시됐었다.
남측은 출토 유물을 3차원으로 스캔해 2020년 발굴조사 착수 전까지 국내 조선 시대 유물들과 비교해 분석하기로 했다.같은 해 12월 2~4일에 걸쳐 실시된 현장답사에서는 미확인 상태였던 ‘아국여지도’상의 조선인 마을 흔적이 다수 확인됐다. 아국여지도는 고종때 연해주 지역 조선인 실태를 조사해 작성한 지도이다.
남북간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했던 당시, 서울시는 이 조사의 발굴 결과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정부, 러시아 등과 협의해 나선-녹둔도의 이순신 장군 북방 유적을 역사문화 유적지로 보존.관리하는 방안을 구상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아쉽게도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2019년 말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이동과 방문이 거의 어려워지면서 러시아가 외국인에 이어 자국민의 이동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발굴 조사에 협조할 여건이 되지 못하였고 그나마 2020년 4월 러시아 연구진이 단독으로 지표조사(사진)는 실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22년 현재까지 이 발굴조사사업에 대한 진척상황은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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