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황현 초상 (출처 : 敬菴全集) 전라도 구례에서 칩거하던 선비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나라가 망하던 그 해 9월에 소주에 독약을 타 마시고 자결했다. 그는 자제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되었는데, 나라가 망한 날을 맞아 한 사람도 국난(國難)에 죽지 않는다면 어찌 통탄스런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고 영원히 잠든다면 참으로 통쾌할 것이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또 4수의 칠언절구 절명시를 남겼는데 시간을 뛰어넘어 인간적 고뇌가 전해지는 한 부분이 있다.
鳥獸哀鳴海嶽嚬 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과 바다도 찌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삼천리는 이미 물속에 잠겼구나.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밤 등불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難作人間識字人 인간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그 무렵 곽한소 선생님은 온양의 족형 곽한일과 밤을 지새면서 망국의 울분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황현의 순국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만사(輓詞)를 지어 순국의 대의를 기렸다.
博識文章振世鳴 박식과 문장은 온 세상을 울렸고
志高行潔播芳名 고결한 지행은 아름다운 이름 알렸네
升庠退隱非忘世 물러나 숨었다고 세상 잊은 게 아니었구나
與國偕亡大義明 나라와 함께 죽으니 큰 의리가 밝도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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