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모호한 물길
“녹둔도가 언제 연륙화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습니다. 18세기 중반 경부터 진행됐다는 분석도 있고, 역사 시대 전에 이미 연륙화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두만강 하구의 퇴적이 활발히 진행돼 온 건 사실이지만 짧은 시간에 퇴적되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서울대 이기석 교수, 월간조선 2013년 3월호)
두만강에서는 홍수 때마다 잦은 범람이 일어났는데 그때 하구 쪽에 쌓인 토사로 인해 수로가 크게 바뀌고 녹둔도 북쪽의 물줄기가 가늘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녹둔도가 연해주 쪽으로 붙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녹둔도가 지리학적으로 어떤 형태의 섬인지는 지도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1861년에 제작한<대동여지도>에는 해도로 그려져 있고, 1754년에 제작한 <비변사 지도>에는 두만강 하구의 삼각주로 그려져 있다. 1759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는 녹둔도를 육지화한 모습으로 그렸다. 녹둔도가 애초엔 하구 퇴적 지형인 삼각주였다가, 후에 육지와 연결되는 연륙화(連陸化) 현상을 겪은 게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1709년 청나라 강희제의 지시로 만든 지도에는 이미 녹둔도와 연해주는 붙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고종 때 제작된 듯한 경흥읍지의 녹둔도에도 그렇게 돼 있다.
곧 두만강의 퇴적 작용이 진행됨에 따라 녹둔도주변의 두만강하구 지형이 크게 변모하였고, 따라서 연륙이라는 지형변화를 겪은 이후 녹둔도의 위치나 윤곽을 추정하기가 매우 막연하고 모호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은 조사 주체와 조사자에 따라 상이한 실측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1880년대 제작된 것으로 밝혀진(辛承權,1993) 「俄國輿地圖」에는 녹둔도의 크기를 남북 70里, 동서 30里라 하였고(河中島의 면적이 300여km2가 넘는다는 것은 두만강하구의 폭을 감안해볼 때 지나친 크기이다.) 또 1890년도에 작성된 일본 외무성의 조사에서는 녹둔도의 크기가 기록자에 따라 남북 最長 25里 동서最長 20里, 周圍 8町許, 四圍 20里 등으로 다양하게 기술되어 있다. 한편 2000년대 들어 연구팀을 이끌고 5차례 녹둔도를 현지 답사한 서울대 이기석 교수는 녹둔도의 면적을 32km²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여의도 4배 가량의 면적이다. - <두만강 하구 녹둔도의 위치 비정에 관한 연구> (이옥희, 대한지리학회지 제39권 제3호 2004 (344~359))

만만치 않은 땅
조선조의 각종 기록 속에서 녹둔도는 변방 방어의 거점이었을 뿐 아니라 함경도 경흥 주민의 농토이기도 했다. 녹둔도의 농경은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造山浦지역의 농민들이 봄에 배를 타고 녹둔도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가을에 추수한 후 본토로 돌아오는 春耕秋歸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내왕할 때 반드시 삿대를 저어 움직이는 배(舟楫)를 이용해야 해서 몹시 고통스럽고 섬의 토질이 차지지 않아 흙벽을 바를 때 모래와 풀을 섞어 쓰는데 비바람이 한번 스쳐 가면 벽이 무너져 남는 것이 없어 적이 쳐들어오면 막을 방책이 없고, 또 큰물이 밀어닥치면 섬 전체가 물에 잠기므로 농민들이 이곳에 상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두만강의 퇴적토에서는 벼·조·옥수수·보리 등의 농경소출이 상당량 있었고, 연어·붕어‧황어‧숭어 등을 잡을 수 있어서 경작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함경도 주민들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땅이었다.
그러나 풍부한 생산물은 인근 여진부족들의 약탈 대상이 되어 잦은 침입을 겪어야 했다. 이에 세조는 조산지역 농민이 녹둔도의 들에 흩어져 농사를 지을 때 野人들이 배를 타고 몰래 들어와 침입, 약탈당할 것이 우려되므로 군사들이 엄중히 방비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또 중종 5년(1510) 좌의정 유순정은 ‘녹둔도가 적의 침로는 물이 깊어 왕래하기 어려우나 우리 백성들의 경작로는 물길이 얕아 다니기 쉬우니 조산만호로 하여금 設堡하도록 하자’고 건의하였고, 중종 9년(1514)안윤덕 등이 변방의 방비책을 올리면서 녹둔도 방비 강화에 관한 건의를, 또 중종 37년(1542)월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사가 농민과 함께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本堡가 빌 정도’라고 우려하는 기록도 있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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